본문 바로가기

중국역사/중국근현대사

[역사]돤치루이정권과 광둥정부

중화민국기(오성기)

 

1916년 6월 6일 위안스카이가 사망하자 중국은 군벌할거시대로 접어들었다. 위안스카이에 이어 제2대 대총통으로 신해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리위안홍이 취임했다. 그는 위안스카이 정권하에서 제정한 중화민국약법을 폐지하고 임시약법을 부활시켰다. 또한 국회의 기능을 회복했다. 리위안홍은 군인 출신이기는 했지만 위안스카이처럼 독자적인 군대를 갖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위안스카이의 뒤를 이어 북양군 2대세력이된 펑궈장돤치루이를 각각 부총통과 국무총리(행정부의 수반이다)에 임명했다. 이들은 각 성의 독자적 군대 통솔자인 군벌과 입장을 같이했다.

 

리위안홍

돤치루이는 기본적으로 중앙집권 국가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이는 국회를 회복시킨 리위안홍과의 대립을 야기했다. 중국의 제1차세계대전 참전여부로 둘의 대립이 심화되자(부원지쟁), 1917년 5월 리위안홍은 돤치루이를 국무총리직에서 파면했다. 돤치루이는 톈진에서 각 성의 군벌을 모아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게 하는 등 무력시위를 벌였다. 리위안홍은 무력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벌 중 한명인 장쉰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오히려 장쉰은 리위안홍을 압박하여, 7월 1일 자금성에 있던 선통제(푸이)를 황제에 복위시켰다. 베이징의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돤치루이는 군대를 수도로 파견하여 장쉰의 군대를 격파하고 청조의 복벽을 좌절시켰다. 이후 리위안홍은 대총통직에서 사임했다. 펑궈장이 대총통직을 이었으며, 돤치루이는 또 다시 국무총리가 되었다(돤치루이 정권). 이후 돤치루이 정권은 일본으로부터 막대한 차관을 받았다. 또한 일본의 요구에 따라 제1차세계대전에 협상국(반대진영으로 동맹국이 있다)으로 참전했다.

 

돤치루이

펑궈장은 평화적인 통일을 모색하고 있던 반면, 돤치루이는 군벌을 무력으로 통합하여 중국을 통일하려고 했다. 이에 펑궈장은 돤치루이의 통일정책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러나 돤치루이는 국무총리로써 내각을 다시 조직하고, 1918년 3월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차관을 이용해 매수 공작에 나섰다. 국회의원 대다수가 그에게 매수되었으며, 이들이 조직한 국회(안복국회)는 펑궈장이 아닌 다른 인물을 대총통으로 선출하였다.

<이 시기 중국에서는 대총통(리위안홍, 펑궈장)과 국무총리(돤치루이)간의 갈등이 자주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 그 이유는 대총통과 국무총리의 관계를 임시약법에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펑궈장

베이징정부를 장악한 돤치루이는 1918년 5월 일본과 중일공동방적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군의 활동에 대해서 중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방위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중국군은 몽골 중부에서 시베리아 동부까지 영역을 설정하여 방위작전을 수행하였는데, 일본군 역시 이 협정으로 중국내 자유로운 군사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중일공동방적협정은 21개조 요구와 마찬가지로 국내의 지식인과 국민들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1918년 11월 독일이 항복함으로써 제1차세계대전이 종결되었다. 중국이 열강에 대해 승전한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에 따라 중국은 파리강화회의 참가권과 국제연맹의 가맹국이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시베리아에 출병한 일본군(블라디보스토크,1918년)

한편, 1917년 돤치루이 정권에 반대한 쑨원과 국회의원 일부가 광저우에서 정부를 조직했다(광둥정부). 국제사회는 베이징정부를 승인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독자적으로 외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광둥정부는 애초에 실효 지배 영역을 갖지 않는 망명정권이었다. 기본 정책은 임시약법의 수호에 있었기때문에 베이징정부에 대해서 북벌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영향력이 없었다. 또한 1918년 5월 광둥지역의 군벌은 무력통일을 위한 북벌을 주장하는 쑨원을 광둥정부에서 내쫓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유지되어온 광둥정부는 10년 뒤 중국전역을 통일하는 국민정부의 기반이 되었다.

 

청말 행정구역 및 주요도시

 

 

# 참고자료

가와시마 신, 「중국근현대사2」, 삼천리, 2013

신성곤,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서해문집, 2004

중국근현대사학회, 「중국 근현대사 강의」, 한울,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