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중국근현대사 (11) 썸네일형 리스트형 [역사]의화단운동과 신축조약 의화단운동은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인의 생활권을 서양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반외세·반기독교 민중운동이다. 중국 내지에서 기독교 포교가 공인된 이후 반외세운동이 형성되더니 1890년대에는 북중국에서 크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특히 1897년 독일의 산둥성 교주만(칭다오) 점령은 청나라 민중의 반외세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1898년 산둥성에서 독일 선교사가 민간의 사원을 파괴하고 교회를 설립한 것이 발단이 되어, 민중이 봉기했다(의화단운동). 초기 반기독교운동은 비밀결사 주도로 진행되었는데, 1899년부터는 관리의 지도를 받은 향촌의 치안조직(단련)이 가담하여 '의화단'이라는 호칭으로 활동했다. 의화단은 부청멸양(청을 도와 서양을 멸한다)의 슬로건을 내걸고 기독교도를 살해하고 교회를 파괴했다. 1899년 말 산.. [역사]변법자강운동과 캉유웨이 변법자강운동은 청일전쟁 직후 중국 분할의 위기 속에서 이를 극복하려는 신사층의 개혁운동을 말한다. 이 운동은 양무운동의 실패를 비판하며 급진적인 근대화를 추구한 것이 특징이다. 참고로 변법은 '낡은법을 변화시킴'을 의미한다. 변법자강운동은 캉유웨이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1890년, 캉유웨이는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서양학을 절충하여 『신학위경고』, 『공자게제고』를 저술하여 볍법자강운동의 이데올로기를 구성했다. 청일전쟁이 끝날 무렵(1895년) 그는 중앙(베이징)에 진출하여 황제(광서제)와 접근할 통로를 확보한 뒤, 강학회를 조직하여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 한편, 지방에서는 학회를 설립하고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여 개혁을 지지하는 관료와 신사를 결집했다. 량치차오와 황쭌센 등이 상하이에서 창간한 잡지인 『시무.. [역사]청일전쟁과 시모노세키조약 1894년~1895년에 전개된 청일전쟁은 동아시아 역사의 하나의 전환점이다. 19세기 후반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제 근대국가로 발전했다. 일본은 청의 타이완을 침공하고 이듬해 정한론(조선을 공격하여 일본을 강국으로 만들어야한다는 논리)을 내세우며 조선과 불평등조약을 체결했다(강화도조약, 1876). 이후 조선에서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이 발생하자, 청나라는 군사개입을 통해 조선의 내정간섭을 실시했다. 이에 일본은 국제법상 조선이 자주국이라는 명분으로 청나라에 대항했다. 1894년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조선의 요청을 받은 청이 출병했다. 톈진조약에 근거해 일본에도 이 사실을 통지했기 때문에 일본도 출병했다. 동학농민운동이 진압되고 조선은 양국 군대에게 철병을 요청했다. .. 이전 1 2 다음